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으로 영화 '와일드'를 관람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1995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직접 걸었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가 2012년 발표한 자전적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책도 직접 읽어보지 못했고, 영화도 상영관에서 직접 보진 못했지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 후기를 남겨본다.
1.
책의 저자이자 영화 주인공인 셰릴 스트레이드는 자신의 전부와도 같았던 어머니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고통과 슬픔 속에 방황한다. 남편이 있음에도 다른 남성들과 자유롭게 잠자리를 하는 등 계속된 외도로 이혼하고 심지어는 마약에 중독되고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하게 된다.
추락할 대로 추락한 자신을 삶을 들여다보며, "어쩌다 이런 쓰레기가 되었는지 몰라" 자책하다가, 어느날 우연히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안내책자를 만나게 된다. PCT는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미국-캐나다 국경까지 펼쳐지는 4,285km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연간 평균 125명 만이, 그것도 평균 152일에 걸쳐서 완주에 성공한다는 험난한 코스이다. 어쩌면 PCT는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26살의 셰릴에게 마지막 남은 탈출구이자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희망의 빛줄기였는지도 모른다.
2.
임신중절 수술 후, 주변을 정리한 셰릴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길고 긴 4,285km 트레일 여행을 홀로 떠난다. 예상했던 대로 이 길고 지루한 여행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셰릴은 거칠고 삭막하지만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대자연 속을 걷고 또 걸으며 폐허로 변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멀고 험난한 여정에서 느끼는 고통과, 순간순간 다가오는 안식과 평안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스스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평화를 얻고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을 찾는다.
여행 이후 그녀는, "모든 고통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좌절은 존재하지만 결국 이겨낼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괜찮아질거야'라는 울림이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3.
영화를 보는 내내, 셰릴이 메고 가던 배낭만 보였다. 배낭! 어쩌면 그건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는 우리들의 짐, 때로는 책임과 의무 때로는 불안감이며 조바심이 아닐까. 배낭 속의 짐들은 모두 없어서는 아니 될 중요한 물건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여정을 가면서 우리는 어쩌면 단촐하게 짐을 꾸리는 법을 배우며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내 짐을 짊어지고 가는 법도 배우는 것이다. 삶이란 결국 내 짐을 감당하는 것이며, 그 짐을 감당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단련되고 튼튼해지느냐의 문제이다.
한번 뿐인 삶, 얼마나 야물고 단단하게 짐을 꾸려야 할지...
짐지고 가는 삶,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걷기 위해 얼마나 나를 단련해야 할지...
W . I . L . D
결국 인간은 거친 황무지에서 홀로 꿋꿋하게 자신과 마주할 때, 때묻지 않은 원래의 자신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또한 단단히 자신의 짐을 지고 걸으면서 진정 강해지고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거친 야생에서 진정한 내 안의 야생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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