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 삶. 꿈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온누리햇살 2016. 6. 23. 15:02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작과 비평사, 2009>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그의 아들들과 형 정약전, 그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어 만든 글모음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이며 행정가였던 그가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을 흐트리지 않고 꼿꼿하게 지탱할 수 있었던 강인한 의지와 생명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자상하면서도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스승의 애잔한 마음과 따스한 정이 스며있다. 무엇보다도 그 밑바닥에는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단단한 현실주의에 기반한 실학자로서의 강인한 의지와 면모가 군데군데 묻어남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세상살이에 대한 교훈,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며, 어른들과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다산의 곧은 선비정신이 담겨있다. 더구나 유배지에 갇혀 아들들의 성장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이 전해지는 대목이 곳곳에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함을 전한다.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라는 당부와 함께 꼭 읽어야 할 책들을 꼼꼼히 일러주며 학문에 최선을 다할 것을 독려하기도 하는 등, 떨어져 있으면서 아들들의 학문을 챙기지 못하는 조바심과 함께 준엄한 꾸짖음도 들어있어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내가 유배생활에서 풀려 몇년 간이라도 너희들과 생활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이 몸과 행실을 바로잡아 효제를 숭상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일에 습관이 들도록 할 것이다"(69쪽)


그외에도 집안 어른들과의 관계며, 양계 양잠하는 법, 허례허식을 경계할 것과 시대를 보는 눈을 늘 가질 것을 경고하면서 독서하는 방법과 친구를 사귀고 심지어 술마시는 법도까지도 일러주고 있어 어른으로서 스승으로서 아버지로서 인생의 세심하고 친절한 지침을 전하고 있다.



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특별히 두 아들에게 지켜야 할 가훈을 전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생계를 꾸리는 방법, 친척들과의 관계, 이웃을 대하는 태도와 재물에 대한 자세, 말과 글,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취해야 할 자세, 무엇보다도 근(勤)과 검(儉)을 거듭 강조하며 부지런하고 검소할 것을 삶의 기본으로 전해준다.
"미관말직에 있을 때도 신중하고 부지런하게 온정성을 다해서 맡은 일을 다해야 한다"(146쪽)
"집에 있을 때는 오로지 독서하고 예를 익히며 꽃을 심고 채소를 가꾸고 냇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고 돌을 모아 동산을 쌓아 선비생활을 즐기도록 한다"(147쪽)
"형태가 있는 것은 없어지기 쉽지만 형태가 없는 것은 없어지기 어렵다... 무릇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 남에게 시혜를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166-167쪽)
"오직 정신적인 부적, 근검(勤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물려준다"(171쪽)

3부. 둘째 형님께 보낸 편지


이 부분은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정약용이, 당시 흑산도에서 귀양살이하던 둘째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글로, 대학자 형제 사이에 인생과 학문을 토론하는 진지한 모습과 형제 사이의 끈끈한 우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형과 아우가 불행하게도 같은 시기에 유배지에 갇혀 귀양살이를 하는 가운데 있지만 자신들의 처지를 원망하거나 한탄하지 않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며 학문적 교류를 하는 모습에서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4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


이 부분에서는 제자들에게 주는 교훈의 글들을 담고 있는데, 특별히 다산의 목민관으로서의 성품과 참스승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가난한 선비들인 제자들에게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세심하게 전해주고 있어 위대한 학자이기 이전에 현실에 기반한 성실하고 근면한 생활인임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만약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에만 뜻을 두고서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치려 한다면 죽어서 시체가 식기도 전에 벌써 이름이 없어질 것이니, 이는 금수일 뿐이다"(283쪽)
"가난한 선비의 생계수단으로 원포와 목축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연못이나 못을 파서 물고기도 길러야 한다. ... 사계절 내내 채소를 심어 집에서 먹을 분량을 공급해야 한다. ... 인삼 만은 유독 쓰이는 방도가 많으니 법에 따라 재배하면 여러 이랑에 많이 심더라도 탈잡히지 않는다"(288-289쪽)


또한 관직에 있는 자로서의 자세로 廉(청렴할 렴)을 누차 강조하면서 곳곳에 그의 강직한 성품, 백성들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온다. "사사로운 일에는 형벌이 없어야 한다"(299쪽)는 당부에서 그의 따뜻한 목민관이 그대로 드러남을 볼 수 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뼈가 녹아내리는 심정으로 세상을 염려하고 자식을 걱정하며 언제 풀릴지 모르는, 영원히 잊혀지질지도 모르는 갇힌 자의 삶을 살았던 정약용. 그러나 같은 시대에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보다 오히려 후대에 더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그의 삶을 바라본다.

유배의 삶, 어쩌면 그것이 그를 더 강하게 하고 단단하게 여물렸는지도 모른다.

어둔 유배지, 어쩌면 그곳이 그를 더 빛나게 하고 아름답게 다듬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어둔 터널을 통과하면서 진정 단련되고 다듬어지고 정화되는 것이리라.


무엇보다도 울컥하게 다가왔던 것은 그의 제자들도 가난했는지 가난한 선비의 삶을 여러 군데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부분이다.

"가난한 선비가 정월 초하룻날 앉아서 일년의 양식을 계산해보면, 참으로 아득하여 하루라도 굶주림을 면할 날이 없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믐날 저녁에 이르러 보면, 의연히 여덟식구가 모두 살아 한 사람도 줄어든 이가 없다. 고개를 돌려 거슬러 생각해보아도 그러한 까닭을 알 수 없다 ... 너는 비록 가난하다고 하나 그것을 걱정하지는 말라"(315쪽)

마치 대 선배 목회자가 가난한 후배 목회자에게 일러주는 말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답이 없고 계산이 안나오는 생활이지만 지나고 나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노라고...


200여년 전, 유배지에서 보낸 그의 편지가 오늘을 사는 내게 깊은 울림과 살아있는 감동으로 다가와 참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200년 후 누군가에게 너도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다듬어져 가라고... 너의 유배지는 나의 유배지에 비하면 얼마나 호사스럽고 윤택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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