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달리다굼" -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온누리햇살 2016. 2. 4. 18:07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막 5:35-43)



병든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향하던 회당장 야이로, 혈루증 여인과의 만남으로 길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야이로의 집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은 절망적인 상황,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엔 온갖 절망과 아픔과 회한이 밀려오는데... 예수님은 야이로의 그 마음을 아신 걸까. 야이로가 한 마디 말도 꺼내기 전에, 무어라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으시고 곧바로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나 야이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은 더욱더 절망적이다. 사람들의 통곡소리가 들리고 딸의 죽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된 듯하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신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소리가 들려온다. 냉정하게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차분히 장례절차를 밟으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딸이 살아있다는 예수님의 선언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까. 기대하고 믿었던 상황은 최악의 절망으로 치닫고, 약속은 불가능한 신기루일 뿐이며 도무지 성취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현실은 바로 눈앞의 거대한 바위로 버티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날마다 약속과 현실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때로는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약속의 성취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믿음이라는 결단을 요구한다. 또한 까마득한 어둠을 통과해야만 믿음은 빛이 나고 생명력을 갖추어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될 것이다.


부활의 축복이 있기 전 반드시 '믿음'이라는 결단을 촉구하시는 예수님!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명령에 충실하여 끝까지 믿음의 끈을 놓지 않을 때 부활의 아침을 깨우는 "소녀야 일어나라" "달리다굼"의 아침은 밝아올 것이다.